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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소한 일상/책

입추 단상

by 달 그림자 2019. 8. 8.

매미 울음소리가 왠지 녹슬었다고 생각될 때 가을은 온다.

벚나무가 그 어떤 나무보다 먼저 이파리를 땅으로 내려놓을 때 가을은 온다.

배롱나무가 더 이상 꽃을 밀어올리지 않을 때 가을은 온다.

팽나무 열매가 갈색으로 익어가고 산딸나무 열매가 붉어질 때 가을은 온다.

도라지꽃의 보랏빛을 손으로 쓰다듬어주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.

 

 

 

여치의 젖은 무릎과 방아깨비의 팔꿈치와 귀뚜라미으의 수염을 생각할 때 가을은 온다.

담배밭에서 담뱃잎을 더 딸일이 없을 때 가을은 온다.

수수밭이 우수 어린 표정으로 과묵해질때 가을은 온다.

냇물 소리가 귓가에서 차가워질 때 가을은 온다.

무심코 바라보던 저수지의 물빛이 문득 눈에 시리게 들어올 때 가을은 온다.

 

 

 

하늘 올려다 보는 시간이 많아질 때 가을은 온다.

비행기가 늘어뜨리고 간 비행운을 따라가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.

텅 비어 있는 우편함을 괜히 기웃거릴 때 가을은 온다.

라디오에서 듣는 이소라의 노래 '바람이 분다'를 혼자 배워보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.

버스의 금 간 유리창이 예사롭지 않게 보일 때 가을은 온다.

거리에서 연탄 실은 트럭을 자주 만나게 될 때 가을은 온다.

밤바다 다리에 감고 자던 죽부인과 이별하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.

넥타이를 매고 싶어지고 옷장을 정리하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.

대학 다니는 아이의 2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 까 고심할 때 가을은 온다.

아버지,라는 말이 울컥해질 때 가을은 온다.

 

-안도현의 발견-  안도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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